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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하
2011년 04월

선정호 : 52호

업종 : 금속

주 생상품 : 공작기계. 차량부품,중기기계, 특수기계(방위산업품: 육상,해상,공군)

사업장 규모 : 근로자 2,259명, 매출액 4조4,348억원(2010)

회사주소 : 경남 창원시 성산구가음정동 391-8 생산2부 열처리반

홈페이지 :

학력사항

- 창원기능대학(’86)
- 태백기계공업고등학교('75) 

소속업체

태성열처리 

특허 및 실용신안

- 특허 (단독 2건)
 제10-0949740호 “스프링 열처리용 지그 장치”
 제10-0954373호 “염욕열처리로 및 그의 제조 방법” 

주요경력

- ’75. 01. ~ ’77. 04. 대한중기공업(주) / 사원
- ’80. 03. ~ ’06. 07. 현대위아(주) / 사원·직장
- ’06. 08. ~ 현 재 현대위아(주) / 반장 

주요수상내역

- 품질명장(’93)
- 금속재료 대한민국 명장 ('06) 

소개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은 현대위아(주) 김기하 반장[생산2부 열처리반]을 4월 이 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선정했다.

현대위아(주)는 자동차부품, 공작기계, 산업기계 및 특수사업(방위산업)을 영위하는 국내 대표적인 기계·방위산업체로, 김기하 반장은 고교 졸업 후 30여년간 이 회사에 몸담으며 금속재료 및 열처리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루어 냈다.

강원도 태백 산골에서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난 김기하 반장은 부모님을 도와 농사와 소먹이를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다른 형제들은 집안 형편상 농사를 거들기 위해 진학하지 못했지만 김반장만은 장남에 대한 기대 속에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지만 그는 농사일 보다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기술자가 되어 월급을 받는 생활을 꿈꾼 그는 1972년 태백기계공고 금속과에 진학하게 된다. 20여리를 걷는 통학 길임에도 하루도 결석이 없을 만큼 성실했던 그는 1,2 등을 유지하며 졸업할 수 있었다. 그의 마을에서 유일한 고등학교 졸업자였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로 공부해야 하는, 그야말로 산골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선 새벽 별을 보시고 시간을 짐작해 일어나 밥을 해주셨습니다. 동생들은 먹지 못하는 쌀밥을 먹고 학교에 다니며 참 많이 미안했지요. 나중에 기술을 배워 가족들을 돕자 마음 먹었습니다.”

졸업 전 서울의 대한중기공업(주) 주조부에 실습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김기하 반장은 하루 일당 500원, 좁은 방에서 동료들과 새우잠을 자는 환경에서도 기술을 배운다는 즐거움으로 서울살이를 잘 이겨낼 수 있었다. 고향에 대한 향수로 많이 울기도 했지만 많은 선배들이 가르침을 주었고 이 실습생활 6개월은 향후 그의 금속재료 기술자의 기초를 튼튼히 하게 된 디딤돌이었다.

“공중목욕탕을 처음 가 볼만큼 촌놈이었지요. 서울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일은 너무도 재미있었어요. 제강, 용해, 주조, 조형, 목형, 열처리 등을 돌아가며 배웠는데 금속과 열처리 분야가 적성에 딱 맞았던 것 같습니다. 오래 사용해 조직이 손상된 금속을 어떤 온도로 어떻게 응급처치를 해주면 다시 회복되는지에 대한 고민과 연구는 늘 흥미로웠습니다.”

1975년 졸업 후 대한중기공업(주) 주조부 열처리분야에 정식 입사하여 열심히 배우며 근무하던 중 정부시책에 따라 이전하는 회사를 따라 창원으로 옮겨간다. 바야흐로 국가 방위산업의 첫걸음을 떼던 때였으므로 그는 방위산업의 태동과 함께 한 셈이다. 병역특례 혜택을 마다하고 국방의 의무를 다 하고 재입사 한 후 그는 그야말로 금속재료 열처리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자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기술연마와 이론습득에 매진한다. 남들보다 먼저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책은 부산이며 서울이며 가릴 것 없이 찾아다니며 구입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그는 쇠의 불꽃유형만 보고도 화학성분 함유량을 판단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고 열처리 기능사 1급 자격증도 취득하게 된다.

“기술서적을 구하러 다니는데 돈이 없을 때는 내가 살 때까지 책을 숨겨놓으라 말도 안되는 부탁을 하기도 했어요. 월급을 받아 책을 사러갈 때에는 그 새 누가 사갈까 불안해 택시를 타고 다녔어요.”

이러한 성취는 또 다시 동기부여가 되어 그는 1984년 창원기능대학(현, 한국폴리텍VII대학) 금속학과 야간부에 진학했다. 주경야독의 피곤한 생활이었음에도 기술에 대한 열정으로, 대학에 다닌다는 긍지로 버티며 많은 기술이론을 배웠으며 현장 중간관리자의 자질을 익혀 나갔다. 피로와 싸워가며 오롯이 그의 힘과 열정으로 얻은 값진 성과였기에 세상 어느 학교 부럽지 않은 졸업장이었다.

“기능대학 졸업장이었지만 서울대학교, 아니 미국에서 받는 학위도 부럽지 않았어요. 내게는 주경야독의 피와 땀이 어린, 너무도 고맙고 소중한 졸업장이었습니다.”

역시 땀은 정직했다. 실무에서, 대학에서 얻어진 경험과 지식은 그의 열정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당시 품질경영 바람이 불며 대기업마다 분임조 활동에 열을 올렸는데 이때 그의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배운 품질관리기법을 적용하며 활발한 개선·제안 활동을 벌인 결과 사내대회, 기아그룹대회에서 차례로 수상하게 된다.

“야간근무를 하고도 집에 들어가지 않는 날이 태반이었죠. 분임조 개선활동에 필요한 데이터 수집과 그 분석에 필요한 실험계획법 등을 회사 전문가에 묻고 적용하느라 회사에서 먹고 자며 살았습니다. 처음엔 독종 취급하며 경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느새 모두들 격려하며 응원해 주었습니다.”

기술자가 되어 가족을 부양하겠다는 그의 소박한 꿈은 어느새 최고의 기능인이 되어 회사와 국가에 이바지 하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되어 있었다. 성과를 인정받아 승진도 하고 오랜 숙원이던 금속재료 열처리 기능장 자격증도 취득했다. 1993년에는 상공자원부(현, 지식경제부)가 선정하는 품질명장에 선정되었다. 어느새 주위에서는 그를 열처리 박사, 금속재료 1인자 등으로 불렀고 국가기술자격제도 심의위원과 출제 및 검토위원으로 활약하는 등 사회에서는 다양한 방면으로 그의 능력을 필요로 했다. 그의 위상이 올라갈수록 사회에 대한 책임감도 더해갔으며 이는 다시 그의 기능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으로 이어졌다.

“회사에 정규대학 금속공학과 나온 엔지니어도 있는데 금속재료, 열처리에 관한 문제들은 사무직, 현장 가릴 것 없이 저를 찾아요. 인정받고 있다는 게 뿌듯하기도 한데 한편으론 부담도 돼서……집에 오면 늦도록 책을 보고, 회사에선 이를 적용해 보고.”

김기하 반장의 이러한 노력을 통해 우리의 방위산업 기술수준도 비약적으로 상승할 수 있었다. 육해공군 각종 무기들의 첨단 열처리 공정을 국산화함으로써 원가절감, 생산기간 단축 등의 유무형의 편익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일본 기술자가 설계하고 국내에서 제작한 항공부품 열처리용 대형 염욕 열처리로가 가동 6개월 만에 염욕액이 누출되어 생산이 중단된 사건이 있었다. 이때 김기하 반장의 아이디어로 염욕 열처리로를 설계, 설치하였고, 이후 6년 동안 누출 사고 없이 계속 가동되고 있다. 김 반장은 이 기술을 특허 출원하여 특허 등록되었고(등록번호 10-0954373: 염욕열처리로 및 그의 제조방법) 이 방법으로 당시 프랑스 Messier Dowty 사에 의뢰해야만 했던 열처리 공정을 국산화하는 쾌거를 올렸다. 현대위아(주)가 확보한 열처리 기술력은 프랑스 M/D사 인증 뿐 아니라 국제항공특수열처리공정 NADCAP(국가항공 및 방위사업협력업체 자격인증제도)을 획득하여 우리 기술력이 국제수준에 이르렀음을 알릴 수 있었다.

“당시 일본 측에서는 이사급의 기술자가 나왔기 때문에 직장에 불과한 제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더군요. 처음에는 들으려 하지도 않다가 끈질기게 설득하고 논리를 제시하니 반신반의 하며 겨우 시도 되었습니다. 4개월여의 실험과 연구 끝에 열처리로를 완성했고 지금도 잘 돌아갑니다.”

이러한 공정개선 실적을 인정받아 2006년에는 기능인 최고의 영예인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되었다. 기술을 배워 가족을 부양하겠다는 꿈을 안고 상경한 후 꼬박 30년만에 최고 기능인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높은 곳에 오른 그는 그만큼 멀리 보고 있었다. 바로 후배 숙련기술인의 양성에 대한 관심이다. 30년이 넘도록 축적된 열처리개선 및 개발 활동 사례들은 그의 재산 목록 1호가 되었고 사내 강의 교재로 쓰이고 있다. 현재 80% 정도 완성된 상태인데 올해 완성할 예정이다.

“대졸신입사원 OJT(현장직무교육)도 제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실무에도 강하지만 배경이 되는 이론의 적용도 설명해주니 신입사원들의 호응이 좋습니다. 이러한 제 노하우를 모두 전수해 저보다 나은 기술자들을 만들어 내겠습니다.”

이외에도 김기하 반장은 중소기업 기술지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모교인 창원기능대학에도 매년 장학금을 내놓는 등 후배 숙련기술인 양성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정년 퇴임 후에는 중소기업 기술컨설팅에도 힘을 쏟을 생각이다.

“조금 힘든 일이지만 그만큼 성취감이 있다는 것, 기능과 기술은 공기처럼 없어선 안 될 중요한 것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저 같은 선배 기능인들이 후배들에게 할 일은 조금 더 좋은 여건을 만들어 주고, 이를 통하여 기능인력을 육성하는 시스템을 성장 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 같은 기능인력의 역할이 지대 하였음을 기억하고 이를 계속 발전시키는 시스템으로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