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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철
2014년 04월

선정호 : 86호

업종 : 제조

주 생상품 : LCD 자동화 장비제조

사업장 규모 :

회사주소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 119-47

홈페이지 :

학력사항

중앙대학교 기계공학 전공 (’88)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79) 

소속업체

(주)와이티에스 

특허 및 실용신안

- 특허 (총 2건)
제1008796270000호 “글라스패널용직립식진공흡착 장치” (단독발명)
제1013053580000호 “3D패널 얼라인용 영상취득장치” (공동)
- 의장등록 (총 1건)
C62210호(출원번호;3019980014509) “병뚜껑따개”(단독발명)
- 국제규격 ISO인증 (총 1건)
ISO9001;2000인증 (2005년 공동) 

주요경력

- ’79,02~‘85,10 ; (주)금성통신 / 기사
- ‘88,05~’91,01 ; 린나이코리아(주) / 계장
- ‘91,01~2004,12 ; 중앙설계사무소 / 대표
- 2005,01~2014,04 현재 재직 중 ; (주)와이티에스 / 이사 

주요수상내역

- 제26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기계제도 직종 1위 “금상” (‘81)
- 동탑산업훈장 수상 (1981)
- 지식경제부 장관상 (2011) “정보디스플레이대상 산업기술부문 우수상” 

소개

□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4월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주)와이티에스 황순철(53세) 이사를 선정했다.
○「이달의 기능한국인」여든 여섯 번째 수상자 황순철 이사는 1981년 제 26회 기능올림픽 기계제도분야 금상 수상 후 지금까지 기계 설계 한 길만을 걸어온 기계 설계 전문가이다.
□ 경상남도 고성군이 고향인 황순철 이사는 어려운 형편에도 주어진 환경에서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던 터라 성적도 항상 상위권이었다.
○ 그러나 일찍이 기술을 익혀 사회에 나가길 희망했던 황순철 이사는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장학금을 받고 인천기계공고 1기로 입학하게 된다.
□ 기술을 빨리 익히고 싶었던 그에게 담임선생님은 자연스레 ‘기능대회’를 추천하게 됐고, 그 때부터 황순철 이사는 기계설계분야 세계대회를 목표로 기능대회를 준비했다고 한다.
○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훈련하여 지방대회에서는 2등을 했지만 전국대회에는 입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꿈을 잃었다 생각한 그에게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찾아 왔다. ㈜금성통신으로의 입사 제안이었다.
“금성통신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기계제도 분야로는 최고수준으로 꼽히는 곳이었어요. 그런 금성통신에서 그곳에 입사해서 다시 한 번 기능대회에 도전해 보지 않겠느냐며 입사제안을 해 주었으니 제게는 너무나 큰 기회였지요.”
○ 황 이사는 이렇게 금성통신 소속으로 세계대회로 가는 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고, 1981년 제26회 기능올림픽 기계제도 분야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수상하면서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 대회 수상 후 돌아온 금성통신에서 그는 금형설계과에 배치되었다. 당시 금성통신은 독일의 지멘스와 합자회사로 금형분야에서는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고, 황 이사는 이곳에서 금형설계의 기초부터 최고수준의 기술을 모두 섭렵할 수 있었다.
○ 최고수준의 기술 보유는 이론에 대한 갈증으로 이어졌고, 황 이사는 중앙대 기계공학과에 다니면서 전문지식까지 더할 수 있었다. 졸업 후에는 린나이코리아에 입사, 프레스 금형설계를 담당하면서 보유한 기술의 적용 영역을 좀 더 넓히게 되었다.
“설계를 하는 일이 적성에 참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국제대회 꿈도 이루었고, 대학공부의 꿈도 이루고 나니 내 힘으로 설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싶다는 꿈이 생기더군요.
□ 1991년, 황 이사는 중앙설계사무소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설계사무소를 시작했다. 금성통신과 린나이코리아에서 사출·프레스 금형설계를 담당하면서 금형설계* 분야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 사출금형설계 : 플라스틱으로 원하는 모양의 제품을 대량생산하기 위한 금형 설계
** 프레스금형설계 : 철판을 변형, 원하는 제품(예: 자동차 외관)의 대량생산을 위한 금형 설계
○ 설계 용역을 하면서 제품 도면이 완벽하지 않으면 금형설계가 정확하더라도 불량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음을 발견한 황 이사는 현장에서 익힌 금형과 가공법을 기반으로 직접 제품설계에 나섰다.
□ 제품설계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수주도 늘어났다. 만능제도기로 직접 제도를 하던 시스템이 CAD도면으로 또 3D도면으로 발전했고 황 이사는 그러한 흐름의 선두에 있었다.
○ 하지만 2005년, 황 이사는 그의 꿈이었던 설계사무소를 정리하고 지금의 (주)와이티에스로 자리를 옮긴다.
“금성통신 입사동기였던 ㈜와이티에스 남성국 대표의 제안이었습니다. ㈜와이티에스는 LCD제조 장비를 만드는 회사인데, 부품의 수가 워낙 많아 제품의 불량을 줄이기 위해 장비설계에 3D 설계를 접목하고자 했던 거지요.”
□ 와이티에스에서 그는 3D로 레이저리페어기*를 처음 설계했다. 노광램프하우스**를 3D로 설계하면서 최소의 사이즈로 설계한 덕분에 지금도 사용하고 있으며, 레이저 광학시스템의 배치를 3D로 하면서 지금까지도 와이티에스의 표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 레이저리페어기 : 레이저를 이용하여 LCD의 불량화소를 수리하는 장비
** 노광램프하우스 : LCD 기판위에 코팅을 하면 중앙부는 코팅이 잘되지만 외곽부는 코팅이 균일하지 않게 되고, 이 외곽부를 빛을 쏘여 없애기 위한 장치
○ 또한, 그는 세계 최초의 영역도 개척했다. FPR(3D) Panel Laminator 장비*를 세계 최초로 개발, 지식경제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LCD장비에 그의 설계기술이 접목되면서 세계적인 제품이 만들어 진 것이다.
* FPR(3D) Panel Laminator : 3D영상을 구현하기 위해 LCD판에 정밀하게필름을 자동으로 입히는 장비

“기술에서 1등을 하겠다는 것이 경영진의 의지입니다.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무한경쟁을 해 나가는 힘은 기술력 외에는 없으니까요.”
□ ㈜와이티에스는 올해 창립 23주년을 맞았다. 총 100여명의 구성원들이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준비하고 연구에 투자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황 이사가 있다.
○ 황 이사는 어렵고 힘들었지만 꿈이 있어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꿈이 그에게는 기술이었고, 그 기술이 미래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그를 성장시킨 꿈을 이제는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 있다.
○ 산업현장교수 활동 뿐만 아니라, 1998년 IMF로 인한 실직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사출금형설계과정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제품설계과정을 진행하고 있으며, 2012년에는 강원도 산업체우수강사로 활동하는 등 그는 이미 기술로 꿈을 전하는 전도사로 이름나 있다.
“야간과 주말을 쪼개어 강의를 하지만 특성화고를 찾아가 강의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기술의 의미를 심어주고 그 아이들이 만들어갈 미래의 꿈을 찾아주는 일은 제게 그 무엇보다 의미 있는 일입니다.”
□ 아직은 성공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황 이사. 그는 처음과 끝이 늘 한결같고 변함없는 삶을 살겠다고 한다.
“정직하게 살아야 행복하다는 신념으로 기술개발에 매진하고, 꿈을 나누는 오늘에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후배 기능인들도 현재 위치에서 달인이 될 때까지 한눈팔지 않도록 당부 하고 싶습니다. 그 때 살아온 삶을 되돌아 보면 ‘기술이 곧 자산’이란 것을 이해하게 될꺼니까요. 저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