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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식
2014년 08월

선정호 : 90호

업종 : 제조

주 생상품 : 공작기계, 자동차 부품 및 선박부품, 금형가공

사업장 규모 : 상시 근로자수(46명), 매출액(108억)

회사주소 : 울산시 북구 매곡동 354-2

홈페이지 : http://www.hanmaceng.com/

학력사항

울산대학교 경영자 과정 수료(‘11)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78) 

소속업체

한맥기연㈜  

특허 및 실용신안

○ 특허, 실용실안 취득 및 국제규격 ISO 인증 등
- 특허
제0428375호 “공작기계용 스핀들”(공동발명)
제0394673호 “공작기계용 스핀들 구조”(공동발명)
- 실용신안
제0346833호 “히터가 내장된 자동차용 스티어링 휠”(단독발명)
제0334243호 “절삭유 필터링 장치”(단독발명)
제105484호 “공작기계용 스핀들 연마기”(단독발명)
- 품질경영시스템 인증
인증서 번호 KQC-3320호 “선박엔진부품, 공작기계, 프레스금형의 설계, 개발 및 생산” 

주요경력

- ’77. 07. ~ ‘80. 10. 현대자동차(주) / 사원
- ‘80. 10 ~ ’90.03 현대중공업(주) / 반장
- ‘90. 03. ~ ’96. 6. 한맥기연 / 대표
- ‘96. 07. ~ 현재 한맥기연(주) / 대표이사


주요수상내역

- 부산․울산 중소기업청장상 (‘08) “우수중소기업인상”


소개

「이달의 기능한국인」아흔 번째 수상자 양정식 대표는 25년간 산업용 공작기계 제작 및 설비 분야에 종사해온 숙련기술인 CEO다.

양 대표는 자신이 숙련기술인 CEO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남다른 기술 개발 ▲직원 우선의식 ▲명확한 목표 설정 세 가지로 꼽았다.

25년 기술력으로 공작기계 및 A/S 국산화 시대 연 주역
양정식 대표가 최초로 개발해 1996년 실용신안으로 등록한 ‘공작기계용 스핀들(Spindle) 연마기’는 산업현장에서 사용되는 공작기계의 주요 부품 중 하나인 스핀들을 기계에서 분해하지 않고 연마해 다시 기존의 정상적인 정밀도가 나올 수 있도록 복원해주는 기계다. 이 기계 개발 전까지, 오래되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스핀들은 아예 교체하거나 분해해서 연마한 후 다시 넣어야 했기 때문에 해당 기계를 장시간 사용할 수 없었고, 재조립 시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양 대표가 스핀들 연마기를 처음 개발한 90년대 초만 해도 공작기계의 대부분이 수입품이어서 기계를 보수하려면 일본, 독일 등 해외 엔지니어들이 들어와야 했기 때문에 비용과 시간도 많이 들었다. 대기업의 경우, 큰 비용을 들여 사오고도 고장이 나 쓰지 못 하고 방치해둔 기계도 여러 대였다고 한다.

양 대표는 공작기계 A/S에 있어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스핀들 연마기 외에도, 절삭유 필터링 장치 등을 개발해 공작 과정에서의 정밀도를 높이는 등 생산성 향상에 기여해왔다. 최근 5년간은 공구연삭기, 호브연삭기, 브로치연삭기 등 수입대체 공작기계들을 개발해냈다. 양 대표와 같은 숙련기술인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90년대만 해도 해외에 의존해야 했던 공작기계의 상당수가 지금은 국산화됐다고 한다.

독자적 보유 기술로 연 매출 백억 대의 강소기업 일궈
양 대표가 설립‧운영하고 있는 제조기업 한맥기연㈜은 양 대표가 단독 발명한 실용신안 세 건 외에, 현대자동차와 공동 발명한 특허 두 건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같은 독자적 보유 기술로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GM대우, 현대중공업 등 쟁쟁한 대기업에 협력업체로 등록되어 거래하고 있다.
현재 연 매출 108억(2013년 기준) 규모의 내실 있는 강소기업으로 성장한 한맥기연㈜은 시작 당시만 해도 ‘한국공작기계서비스’란 이름의 영세한 공작기계 보수업체였다. 창업을 위해 현대중공업을 퇴사한 양 대표가 친구 두 명과 함께 자본금 4500만원으로 차린 회사였다. 처음에는 트럭으로 전국을 돌며 중소기업의 공작기계들을 고쳐주는 일로 시작했지만, ‘스핀들 연마기’를 개발하면서 사업이 궤도에 올랐다. 1996년에는 지금의 이름으로 법인 등록을 하고, 이듬해 자체 공장을 준공할 수 있었다.

혹독한 IMF도 이겨낼 수 있게 한 기술과 사람의 힘
1997년, 공장을 준공하던 중 한맥기연㈜은 IMF를 맞닥뜨렸지만, 남다른 기술력으로 혹독한 경기 불황을 이겨낼 수 있었다. 누구도 할 수 없던 것을 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영세업체였던 당시에도 대기업들과 안정적인 거래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IMF 한파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

IMF를 겪은 후, 한맥기연㈜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며 오히려 경기 불황에도 매출 기복이 없는 단단한 체질을 갖추게 됐다. 현재 한맥기연㈜은 새로운 공작기계를 직접 만들고, 설비하는 등의 공작기계 사업뿐 아니라 자동차 및 선박 부품 제조업, 금형가공 사업 사업까지 전개하고 있다.

IMF를 이겨낸 데에는 함께해준 직원들의 힘도 컸다. 어려운 시절에도 등 돌리지 않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합심해 매일 밤 11~12시까지 일한 끝에, 한맥기연㈜은 결국 부도 처리 한 번 하지 않고 IMF를 극복해낼 수 있었다. 직원들을 우선시하는 양 대표의 경영철학은 이 때 생겨났다.

현재 한맥기연㈜에서는 자녀 대학등록금 지원, 사택 및 기숙사 제공, 경영 이익에 따른 성과급 지급 등의 혜택을 직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공식적인 복지혜택 외에도, 휴게실에 음료, 빵 등 간식을 상시 비치하고, 창립기념일에는 원하는 브랜드의 고급 등산용품을 선물하는 등 가족 같은 회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만간 직원 자녀들의 고등학교 등록금 지원도 시작할 계획이다. 이 같은 노력으로 재직근로자 고용유지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 양 대표는 부산‧울산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우수중소기업인상’을 받기도 했다.

“직원들이 다 행복해야 됩니다. 중소기업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소중하거든요. 인생의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데 회사가 편하고, 회사의 비전에 공감하고, 회사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진짜 어려울 때도 함께해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전부 다 만족스러울 순 없겠지만 회사에서 해줄 수 있는 건 최대한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해 한맥기연㈜은 현재 ‘지역‧산업 맞춤형 인력양성’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울산대학교, 폴리텍대학 등 지역 내 학교와 한국산업인력공단 울산지사 등 관계 기관과 함께 산학연계 사업 참여, 맞춤형 인력양성을 위한 교육과정 개발, 지역인재 채용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양 대표는 “구직자와 중소기업 간에 직접 채용이 이뤄지던 기존과 달리, 이 사업을 통해 관계 기관이 인력 양성 및 채용 과정에 함께 참여하면서 근로자나 사측 모두 신뢰를 바탕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청년 시절부터 단 한 가지 목표 정해 외길 인생 걸어와
양 대표가 처음 기계를 접한 것은 가정 형편에 맞춰 부산기계공고 기계과에 진학하면서부터다. 당시 부산기계공고는 거의 국비로 운영되는 데다 기숙사가 있고 취업도 잘 되는 학교였기 때문에 학교장 추천 없이는 지원조차 어려운 학교였다. 가정에 보탬이 되고자 일찍 취업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엿장수에게 엿을 사먹는 대신 부서진 라디오 같은 걸 사다가 혼자 고쳐보며 노는 걸 좋아했던 그에게는 적성에도 딱 맞는 진로였다.

부산기계공고 기계과 3학년 시절, 현대자동차에 실습생으로 나오면서 양 대표는 본격적으로 숙련기술인로서 사회에 발을 내딛게 됐다. 그러나 사회 초년병에게 처음부터 원하는 기회와 자리가 오지는 않았다. 단순 작업만 하는 부서에서 기술을 배울수 있는 부서로 보내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했지만 부서 이동은 쉽지 않았고, 양 대표는 결국 퇴사 후 원하던 부서로 재입사를 했다.

현대자동차 재입사 후 공작기계를 보수하는 보전부에서 얼마 일하지도 못 하고 양 대표는 현대중공업으로 적을 옮기게 됐다. 2차 오일쇼크의 영향으로 그룹사 내 대규모 인력 재편이 실시됐던 것. 현대중공업에서도 처음부터 원하는 업무를 할 수는 없었다. 다듬질기능사 자격증이 있다는 이유로 배의 프로펠러 부분을 연마하는 부서에 배치된 양 대표는 이번에도 끈질기게 보전부로 보내줄 것을 회사에 요청하기 시작했다. 1년 후에는 천장 크레인을 고치는 부서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다시 1년 간 근무하고 난 끝에, 원하던 곳으로 갈 수 있었다. 그가 그토록 고집스레 부서 이동을 요청했던 이유는 공작기계에 대한 기술을 배우기 위함이었다.

“처음부터 제 목표는 한 가지였습니다. 언젠가 우리 기술로 공작기계를 만드는 회사를 직접 차리겠다는 것. 현대자동차 실습생으로 현장에 나가보니 대형공작기계부터 특수공작기계까지 전부 일본이나 독일에서 들여온 것뿐이었어요. 기계 처음 설치하고 쓰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뿐 아니라 유지, 보수하는 일에도 항상 외국에서 엔지니어나 슈퍼바이저가 와야 했죠. 그들의 기술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옆에 붙어 보고 배울 수 있는 부서로 가야 했습니다.”

25년간 그 한 목표를 향해 달린 끝에 그는 지금 소박하나마 자신의 꿈을 다 이룬 것 같다고 말한다. 양 대표는 마지막으로 지금의 청년들에게도 자신처럼 평생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목표를 찾기를 권하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