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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근
2015년 04월

선정호 : 98호

업종 : 서비스

주 생상품 : 비파괴검사 용역

사업장 규모 :

회사주소 : 경남 창원시 의창구 원이대로 56번길 2-39

홈페이지 : http://www.smndt.co.kr/

학력사항

진주공업고등학교 (1977년)
창원기능대학 (1990년)


소속업체

세명검사기술(주) 

특허 및 실용신안

- 특허: 제10-1247533호 “불연속 조사에 의한 X선 비파괴검사방법”
제10-1252796호 “파이프 용접라인의 X선 비파괴검사 장치”
제10-1252797호 “파이프의 X선 비파괴검사방법”
제10-1263751호 “X선 비파괴검사용 필름지지 장치”
- ISO 인증 : 품질경영시스템 인증서 (ISO 9001 : 2008) 

주요경력

- 1977~1980 부산제철(주) 근무(기사)
- 1983~1990 한국검사개발(주) 근무(주임)
- 1990~2000 새한검사기술, 금산기술검사, 나진검사기술 근무(소장)
- 2000~현재 세명검사기술(주) 대표이사 

주요수상내역

- 산업자원부 장관 표창 (2007.11)
- 경상남도 도지사 표창 (2011.02)
-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표창 (2013.02) 

소개

이달의 기능한국인 아흔여덟 번째 수상자인 제정근 세명검사기술㈜ 대표는 30년째 산업현장에서 검사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비파괴검사 전문기술인이다. 수력, 화력, 원자력발전소의 발전설비와 구조물, 교량, 선박, 플랜트, 빌딩, 위험물탱크, 송유관, 가스관 등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시설물들에 사용되는 금속에 대한 비파괴검사를 통해 안전한 사회 구현에 이바지하고 있다. 비파괴검사는 금속 용접 부분의 결함, 철제품의 내부 균열과 기공(氣孔) 등의 결함을 제품에 손상을 주지 않고 방사선, 초음파 등으로 검사하는 기술이다. 경제적 손실 예방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산업계 전반에서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

15년 만에 매출 10배, 비파괴검사 전문기업으로
제 대표가 2000년 3월 세운 세명검사기술㈜은 직원 270명 규모의 중소기업으로 지난해 기준 173억5,800만원의 매출을 올린 비파괴검사 전문기업이다. 현재 두산중공업, 대우중공업,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포스코건설, 현대 로템, NOV(노르웨이 해양플랜트업체) 등 300여 국내외 기업들의 국내 생산ㆍ작업현장에 직원들을 파견, 검사 업무를 보고 있다. 첨단 장비를 갖추는 것과 함께 비파괴검사에 대한 기술혁신의 필요성도 인식해 지난 2007년 부설연구소를 설립, 비파괴검사 장비의 국산화 및 자동화 기술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 노력의 결과로 같은 해 강관 제조업체인 EEW코리아 생산공장(경남 사천 소재)의 방사선투과 검사 장비를 자동화 했고, 이를 통해 제품 출고 전 최종적으로 이뤄지는 비파괴검사업무의 효율을 10배 이상 향상시켰다. 세명검사기술㈜은 이 분야 공을 인정 받아 2007년 기술 혁신형 중소기업(Inno-Biz)으로 지정됐으며, 2012년에는 이 검사 자동화 장비에 적용된 비파괴검사 기술 관련 6건의 특허를 취득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제 대표가 이 같은 실적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비파괴검사에 대한 비전을 갖고 한 우물만 판 덕분이다. 1977년 2월 진주공고를 졸업한 그는 당시 부산제철(현 한국철강)에 입사, 컨테이너 제작부문에서 검사 업무를 시작했다. 제품이 정확한 크기로 만들어졌는지 줄자로 확인하는 단순 치수검사였다. 이후 1983년 군복무를 마친 후 다시 검사 업무 일자리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비파괴검사를 처음 접하게 됐고, 장래성이 있다고 판단해 한국검사개발㈜에 입사하면서 이 세계에 입문했다. 당시에는 원자력발전소 관련 구조물 공사에서나 사용되는 흔치 않은 기술이었다. 제 대표는 “나라가 발전하면 대형 공사가 늘 것이고, 동시에 안전에 대한 인식도 개선돼 비파괴검사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봤다”며 “편하고 익숙하던 일반검사 구직을 과감히 포기하고 생소하던 비파괴검사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실제 이후 성수대교(1994년), 삼풍백화점(1995년) 붕괴사고까지 겹치면서 비파괴검사 수요는 그의 생각 이상으로 늘었다.
최고를 향한 집념 그리고 절망
비파괴검사 업무는 힘들었다. 밤낮이 바뀌었다. 방사선투과장비가 동원되는 검사업무 특성상 만에 하나 생길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해 현장 직원들이 퇴근한 뒤 야간이나 휴일에 검사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2013년 관련 법령(비파괴검사진흥법, 원자력안전법)이 강화돼 현재는 각 작업장마다 방사선투과검사실(RT-Room)이 설치돼 낮에도 검사를 할 수 있다. 제 대표는 “일이 힘든 것도 힘들었지만 대졸 직원들은 사원이라 불렸고 우리 고졸 출신들은 공돌이로 통했다. 회사에서 입는 옷도 달랐고 밥 먹는 식당도 달랐다”며 “고졸 기술직에 대한 차별을 극복하고 실력으로 승부하기 위해 창원기능대학 금속학과 진학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금속학은 비파괴검사의 기초가 되는 학문이다. 학비는 물론 일부 생활비까지 국가에서 지원하는 대학이었다.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면서도 제 대표는 1984년 비파괴검사 기능사 2급 자격 취득에 이어 창원기능대학 입학지원 요건인 1급 기능사 자격까지 취득(1986년), 1988년 ‘주독야경’ 대학생이 되었다.

비파괴검사에 관한 한 최고가 되기 위해 제 대표는 1990년 대학 졸업 후 회사를 나와 직장 동료와 함께 비파괴 검사 업체 하나(새한검사기술/동명의 다른 기업이 있음)를 설립했다. 하지만 3년 만에 동업자가 자신 몰래 다른 업체와 손잡고 합병해버렸다. 합병회사에서 1997년 나온 뒤 2개월 가량의 방황이 이어졌다. 힘들게 키운 회사를 그렇게 해서 잃고 나니 비파괴검사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제 대표는 “회사는 없어졌어도 그간 갈고 닦은 기술은 잊으려고 해도 잊혀지지 않았다”며 “결국 다시 비파괴검사 세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일반검사만 시행하던 모스텍이라는 회사에 들어가서 비파괴검사 사업부를 만들고, 그 부장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비파괴검사 전문기업을 키워 이 분야 최고가 돼 보겠다는 생각에 1997년 말 나진검사기술에 들어가 창원권역의 비파괴검사 업무를 도맡아 했다. 이후 1999년 말 회사가 부도 위기를 맞자 장비와 인력을 인수, 이듬해 3월에 지금의 세명검사기술㈜을 창업했다. 최고가 되기 위한 발판이 비로소 만들어진 것이다.

안전은 타협 대상이 아니다
현장에서 15년 이상 쌓은 경험은 회사를 운영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창업 당시 직원 20명으로 17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제 대표는 10년 뒤인 2010년 매출을 105억3,100만 원(직원 수 150명) 규모로 끌어 올렸다. 현장 경험과 함께 그가 꼽는 성공 비결은 정도경영.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일인 만큼 검사 결과를 놓고 타협하는 일은 없었다. 그는 “검사 결과가 불량으로 나올 경우 해당 부품이나 구조물을 다시 제작하거나 불량을 수정을 하는 데 비용과 시간이 추가될 수밖에 없어 제조업체들은 검사에 압력을 넣기도 했다”며 “훗날 반드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불량 판정을 할 수밖에 없다. 이걸 합격 판정하면 당신도 우리도 온전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 설득해 위기를 극복했다”고 말했다.
안전과 관련해서는 타협은 없다는 제 대표의 원칙은 업체들과의 거래 단절로 이어지기도 했다. 2013년 정부는 비파괴검사 환경과 조건을 강화해, 방사선을 이용한 모든 비파괴검사 현장에 대해 방사선투과검사사실(RT-Room) 설치를 의무화 했다. 발주기업이나 기관은 검사실을 설치해야 하고, 해당 제품은 반드시 검사실로 옮긴 뒤 검사를 해야 해서 인건비와 시간이 더 들게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거래하던 제조업체 중 3군데는 검사 단가를 올려주기는커녕 검사실 설치까지도 검사업체에 전가했다. 거래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제 대표는 “우리가 돈을 벌고 안 벌고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안전 문제였다”며 “안전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은 업체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거래 업체가 줄자 승승장구하던 회사 매출은 처음으로 내려 앉았다. 2012년 160억600만원에서 2013년 149억2,600만원을 기록했다. 때마침 찾아온 국내 플랜트ㆍ조선산업의 침체 영향도 받았다.

하지만 위기에 쓴 정공법 호실적으로 화답이 왔다. 더 큰 업체들과 거래를 맺었다. 지난해 철도차량생산 기업인 현대 로템과 노르웨이의 해양플랜트업체인 NOV와 비파괴검사 업무 계약을 체결했다. 이 덕분에 지난해 매출(173억5,800만 원)은 다시 상승가도에 올라섰고 올해 200억 원을 넘보고 있다.

사람이 최대의 경쟁력
위기에도 회사를 건실하게 운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제 대표의 사람 중심 경영이 큰 힘을 발휘했다. 비파괴검사의 경쟁력은 모두 직원들의 전문성과 기량에서 나온다. 제 대표는 “비파괴검사의 생명은 신뢰다. 이 신뢰는 직원 개개인에게 달려 있다. 유럽 검사 자격, 미국 기준의 검사 자격 취득에 비용이 평균 300만 원 정도 들지만 직원들이 자격을 취득할 경우 비용 전액을 회사가 대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인정되는 비파괴검사 자격은 ISO(유럽), ASNT(미국) 등 두 가지가 있으며 국내에서는 국가자격(비파괴검사기사 등)이 있다. 비파괴검사 검사원은 유럽과 미국, 국내 등 세 가지 자격을 갖춰야만 해외에서 발주하는 선박, 플랜트 등의 제품에 대한 비파괴검사업무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다. 세명검사기술㈜은 직원들의 국제적 수준의 검사 자격 취득 비용 지원사업에 2012년 500만 원을 쓴 데 이어 2013년 3,100만 원, 작년엔 4,090만 원을 지출했다. 제 대표는 “힘들수록 사람에게 투자하는 게 경영의 정석”이라며 “일이 고돼 숙련 직원들이 이직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을 키우는 일은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제 대표의 이 같은 생각 덕분에 세명검사기술㈜의 직원 270명 중 약 200명이 유럽, 미국 기준의 비파괴검사 자격을 갖추고 있다. 업계에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비율이다.
지역 주민 안전에도 앞장
최근 몇 년 사이 초음파를 이용한 비파괴검사 비율이 증가하고 있지만 절반 정도의 비파괴검사는 여전히 병원 엑스레이처럼 방사선 투과 방식으로 이뤄진다. 방사선에 관한 한 제 대표를 포함한 직원들이 전문가일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이에 제 대표는 2010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서 조직한 방사선사고지원단(U-REST)에 가입, 방사선사고, 테러 초동 대응을 위해 현재 경남 권역 방사선원사고 지원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병원, 산업체 등에서 이용되고 있는 수많은 방사선원과 기기에서 사고가 날 경우 초기 현장에 출동해 방사선 누출 여부를 확인하고 KINS 요원과 출동한 경찰, 소방과 정보 공유를 통해 국민들을 방사선 오염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제 대표는 큰 사고들을 겪고도 여전히 안전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낮은 인식 수준을 보면 안타깝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 경쟁이 결국은 비용 절감 전쟁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업체들이 전수검사를 부분검사로 전환하는 등의 방법으로 안전의 최후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비파괴검사 비용을 줄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 중의 기본, 안전에 충실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