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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국
2019년 04월

선정호 : 146호

업종 : 제조업(자동화기계장비)

주 생상품 : 압주조기, 중력주조기,디버링기, 탈가스기,고압주조기

사업장 규모 : 상시 근로자 수 10명, 매출액 56억

회사주소 : 경기도 시흥시 엠티브이 28로 20번길 13

홈페이지 :

학력사항

- 태백기계공업고등학교 (1984)

- 경기과학기술대학교 (2017)

 


소속업체

- 업 종: 제조업(자동화기계장비)

- 주 생산품: 저압주조기, 중력주조기,디버링기, 탈가스기,고압주조기

- 사업장 규모: 상시 근로자 수 10, 매출액 56

- 소재지: 경기도 시흥시 엠티브이 2820번길 13


특허 및 실용신안

- 저압 주조기 등 단독 특허 총 5

- 자동화기계장비(저압주조기)에 대한 설계,개발 및 제조에 대해 국제표준화기구(ISO) 9001, 국제표준화기구(ISO) 14001 2


주요경력

- 1990 ~ 1996 제양기공 차장

- 2002 ~ 2005 나노캐스텍 이사

- 2007 ~ 2018 진양기계 대표이사


주요수상내역

- 산업통상자원부장관상 (2016)

- 1백만불 수출의 탑 수상 (2016)


소개

이달의 기능한국인146번째 수상자 권진국 대표는 32년간 주조기, 디버링기를 제조해 온 기능인이다. 유비무환의 마음가짐으로 언제나 맡은 바를 성실히 수행한 덕분에 기능인으로서 신뢰를 쌓아 5,000만 원으로 창업을 시작했음에도 큰 어려움 없이 10년 만에 100배가 넘는 매출을 올리는 등 큰 성과를 이뤘다. 꾸준한 기술 개발과 해외시장 진출로 백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는 등 국가 발전에도 이바지 하고 있다.

어머니의 부지깽이에 담긴 교육열

권진국 대표는 1962년 경상북도 봉화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을 만큼 외진 산골에서 자랐다. 어려운 집안 형편 덕분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두 살 터울 형이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중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했다.

뒤늦게 학교에 입학했을 때 동급생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그런 그에게 부지깽이를 들어가며 학교로 보낸 것은 어머니였다. 문맹이 흔했던 시절이었음에도 어머니는 한글을 깨우쳤을 만큼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고 그만큼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이기지 못해 학교에 다니게 되었지만 남들 보다 학업 시기가 늦어진 만큼 성실히 학업에 임했다. 덕분에 실장을 도맡아 하며 리더십과 책임감을 기를 수 있었다.

가난 했기에 선택한 기술의 길, 운명이 되다

가난하던 시절,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해 젊은 나이에 기술자로 돈을 벌던 마을 선배들은 권 대표에게 롤모델이었다. 버스비가 없어 왕복 12km를 걸어서 등교를 하고, 한겨울에 양말이 없어 고무신만 신고 다니다 동상에 걸리기 일쑤였던 그에게 기술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장학금 혜택이 좋았던 태백기계공업고등학교 정밀기계과로 진학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여전히 동급생들보다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모범이 되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성실히 기술을 연마했다. 그 결과 2학년 때 정밀가공기능사(밀링) 2급 자격증을 취득에 성공해 장학금을 받으며 졸업할 수 있었다.

분에 87년 군대 전역 후 입사했던 첫 직장에서 곧바로 현장 책임자로써 근무를 게 된다. 꾸준하게 연마했던 기술, 맏형으로써 동급생들을 챙기던 리더십이 빛을 발한 것이다.

직원이 아닌 사장처럼, 회사 일을 내 일처럼

학창시절부터 몸에 밴 리더십과 성실함은 권 대표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직장에서는 급여 인상분을 형편이 어려운 직원들과 나눴고, 대표로부터 신뢰를 얻어 과학기술대학교의 전신인 생산기술원에 야간으로 입학해 치공구설계를 전공한다.

덕분에 전용기계 제조 회사인 제양기공설계부서로 전직할 수 있었다. 설계를 하며 현장과 기술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게 됐고 지금의 진양기계를 있게 한 설계기술의 초석을 닦을 수 있었다.

직원일 뿐이지만 대표 결재가 끝난 사안도 재검토해 오류를 바로잡고, 협력업체의 사정으로 납기일이 늦어질 때는 무작정 한밤에 출근을 하기도 했다. 맡은 일은 끝까지 책임지려는 모습에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이는 창업의 기초를 다지는 계기가 된다.

기술이 있다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로 실업자가 속출할 때, 오히려 권 대표는 스카우트를 받으며 기능인의 을 이어갔다. 그만큼 기술을 인정을 받은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거래처들이 인적으로 일을 맡기기도 할 정도였다. 자연스레 창업을 추천하는 목소리도 많아졌다.

2007년 권 대표는 자본금 5,000만 원에 직원 3명과 함께 진양기계를 창업한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쌓아두었던 신뢰 덕분에 사업은 초반부터 안정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큰 거래를 위해서는 자신감과 도전정신도 필요했다.

항공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2011년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영업을 하고자 방문을 했었으나 문전박대 당하듯 돌아서야 했다. 그러기를 수차례 거듭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2년간 담당자를 쫓아다니며 기술력을 알렸다. 결국 현장 시찰을 거쳐 33억 사업을 수주하기에 이른다.

한국 굴지의 항공 관련 회사와 거래를 함에 있어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 끈기 가질 수 있었던 원천은 바로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권 대표는 지속적인 기술 개발을 위해 2010년 사내 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매년 매출의 약 8%를 연구개발(R&D) 분야에 투자하고 있으며, 2011년 국내 최초로 저압식 주조기 제조에 성공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고 있다.

이제는 나누는 삶을 실천할 때

권 대표는 한 사람의 기능인 선배로서 지금까지 쌓은 기술과 지식, 경험을 직원 및 후배들과 공유하길 원한다. 2016중소기업 특성화고 인력양성사업참여해 원주공업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현장 실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특강을 진행했다. 학연, 지연 없이 지금까지 오직 기술로 성과를 이룩해 온 지혜를 전하기 위함이다.

가난했던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기부 및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인력양성사업으로 인연을 맺은 원주공업고등학교에 장학금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 개발도상국가에 기부 활동도 이어가는 중이다. 또한 도서관 봉사, 3세계 어린이 보건위생을 위한 천연비누제작’, ‘3세계 어린이 보건위생을 위한 캠페인등 다양한 봉사 활동에 참여하며 더불어 사는 삶,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