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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범
2010년 11월

선정호 : 47호

업종 : 원자력

주 생상품 : 원자력설계, 고온고압 제어밸브

사업장 규모 :

회사주소 : 대전광역시 유성구 탑립동 899

홈페이지 :

학력사항

- 수도전기공고 졸업(1982)
- 부경대 기계공학과 졸업(1993)


소속업체

시스템디엔디㈜ 

특허 및 실용신안

- 특허 제0477004호 “유체저항장치 및 이를 장착한 유체처리장치”
- 제0477005호 “디스크적층식 감압장치 및 이를 장착한 유체처리 장치”
- 제0527918호 “유체 유동제어장치”
- 제0438047호 “유체의 속도 및 압력 강화 제어용 저항장치”
- 제0894430호 “초음파, 음향 및 온도변화를 이용한 밸브의 유체누설 측정 장치 및 이를 이용한 유체누설 측정 방법”
- 실용신안 제20-0415452호 “표면에 탄소 이온 주입층을 형성한 밸브장치”
- 국제규격 ISO 인증: ISO9001 "발전설비의 설계, 제조 및 엔지니어링서비스“ 

주요경력

-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 과장 (1982.2~1999.1)
- 전력연구원 선임연구원 (1999.1~2002.4)
- 시스템디엔디(주) 대표 (2003.2~) 

주요수상내역

- 산업자원부장관 표창/2005/산업자원부/“전력산업 발전공로”
- 중소기업청장 표창/2009/중소기업청/“기술창업 선도기업”
- 지식경제부장관 표창/2010/지식경제부/“기술혁신대전” 

소개

“지금껏 배운 것 이제 국가에 돌려줘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공부가 재밌어 법조인을 꿈꾸던 강원도 영월 시골 소년이 있었다. 농사짓는 집 팔 남매 가운데 일곱째로 태어나 누나 형들을 보고자란 덕에 일찍 철이 든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판검사의 꿈을 키웠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중학교 등록금이 없어 농사일을 거들며 1년을 기다려야 했지만 꿈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공부에 제법 재능이 있어 중학교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는 조용히 그 꿈을 접어야 했다. 10년간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던 꿈을 버리기까지 소년은 2년이나 걸렸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보낸 고등학교 생활로 희망을 잃었던 그가 정신을 차린 건 고1때 담임선생님의 믿음 덕이었다. 그는 다시 ‘최고의 기술자가 되겠다’는 새로운 꿈을 꾸며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딱 30년 만에 그 꿈을 이뤘다. 그는 연매출 50억원, 직원 60여명 규모의 원자력 기술 전문 회사 ‘시스템디엔디’ 대표가 됐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11월,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김영범(48) 시스템디엔디 대표를 선정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어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한데 과분한 상입니다.”
최고의 기술자가 되기로 결심한 김 대표는 공고 졸업 후 그는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하여 부산에 있는 고리원자력본부(現 한국수력원자력)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결혼도 21살에 빨리했다. 가정이 생기자 책임감이 생겼고 목표가 뚜렷하니 일에도 탄력이 붙었다. 직장생활 5년 후부터는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기위해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거의 매달 시험을 봤고 틈틈이 지금까지 따낸 자격증은 원자력 발전 기술사 등을 포함해 26개에 이른다.
“어릴 때부터 워낙 책을 좋아했고 뭘 하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 있었어요. 발전소에서 설계 일을 하다보니 기술 외에도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현장에서 체감하면서 대학을 가기로 마음먹었죠.”
김 대표는 1991년부터 10년간 야간시간을 활용해 부경대학교에서 학부와 대학원과정까지 마쳤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크게 사회나 국가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월급쟁이 15년 만에 사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그때부터 사업을 위해 계획을 철저히 세웠지요.”
이를 염두에 두고 대학에서도 기계공학과 경영학을 복수로 전공을 했다. ’99년에는 전력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기술 아이템 개발과 관련한 경험을 쌓았다. 3년 후인 2002년, 명예퇴직을 한 후에도 그는 섣불리 사업에 뛰어들지 않았다. 수입에만 의존하던 ‘밸브’로 사업 아이템을 정한 그는 한 밸브 회사로 이직해 1년간 현장을 경험했고 창업스쿨은 10군데도 더 다녔다. 사업체를 내기 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싶었다.

2003년 2월, 드디어 김 대표는 3,700만원을 투자해 7평짜리 밸브 설계 및 개발 회사를 창업했다. 그렇게 준비를 했어도 사업은 녹녹치가 않았다. 직원을 10명이상으로 넘기는 데만도 4년이 넘게 걸렸다. 자금 압박은 잦았고 직원들도 3개월을 버티질 못했다.
“이 분야에 오래 종사하다 보니 나름의 네트워크도 갖췄고 기술력도 있으니 먹고 살 정도는 버는 데, 정작 제 뜻대로 사업을 확장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자금과 직원관리 뭐 하나 쉽게 풀리는 것이 없었죠. 사업은 정말 무엇보다도 사람(직원)이 제일 중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계속되는 고비 속에서도 눈과 귀를 열고 묵묵히 한길을 걸어온 덕일까. 발전소 성능진단평가 기술용역 및 안전등급기기 검증 평가 등 점차 많은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됐고 이는 매출로 이어져 2007년 대덕밸리에 사옥을 마련하고 직원도 50여명으로 늘렸다. 그 사이 특허도 22개씩이나 출원했다.

지난해는 시스템디엔디(주)에게 큰 의미를 준 한 해였다. 국내업체로는 최초로 ‘원자력용 제어밸브 구동기 국산화 개발’에 성공하였으며, 한수원의 제어밸브(J232A) 공급업체 자격 취득을 시작으로, 화력발전 5사(한국중부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남동발전, 한국동서발전, 한국서부발전)에도 기자재공급자 및 정비적격업체 등록을 완료했다. 특히 세계 최초로 ‘헬리컬 트림’을 개발, 이를 장착한 밸브를 내놓아 정부로부터 신제품인증(NEP)을 받았다.
“언제 또 고비가 올지 모르지만 뭐든 견뎌낼 자신이 있습니다. 인내하는 내공이 지난 40년 넘게 얼마나 쌓여 있겠습니까. 하하”

김영범 대표는 사회 환원에도 뜻이 깊다. ‘대한민국과 한민족을 사랑합니다’라는 회사 슬로건 아래 회사 수익금 일부를 불우이웃돕기에 기부해왔으며 연변 과기대 장학사업을 비롯하여 국내에서도 장학사업 및 산학협력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기능인, 엔지니어로서의 자긍심과 긍지를 가지고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어느 곳에서든지 명예로울 수 있습니다. 최고가 되십시오.”
진정한 엔지니어로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후배들에게 강조하면서, 김 대표는 원자력 관련 사업뿐 아니라 일반산업 및 신재생 에너지와 같은 녹색 시장에도 진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녹색 시장을 신성장 동력으로 활용해 시장의 다변화를 꾀하겠다는 계획이다.

“원자력 발전 산업 분야는 미래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고수익 사업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시스템디엔디를 앞으로 세계 최고 원자력분야 종합 엔지니어링사로 만들어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김영범 대표는 ‘2020년 3,000명이 입주할 수 있는 플랜트 엔지니어 빌딩을 지어 1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하자는 ‘1조 프로젝트’를 2년 전부터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