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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완
2011년 09월

선정호 : 57호

업종 : 기계

주 생상품 : 서보프레스, 센터링디바이스, 센터마스터, 지능형 인디케이터 등

사업장 규모 : 근로자수(19명), 매출액(36.5억), 수출(6억)

회사주소 :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동 371-37 STX-V타워 1205호

홈페이지 : http://www.cnmrobotics.com/

학력사항

- 오사카대학(일본) 박사('98)
- 오사카대학 석사('93)
- 충남대학교('87)
- 금오공업고등학교('78) 

소속업체

씨엔엠로보틱스㈜ 

특허 및 실용신안

- 특허 제10-0993213호 "기계부품의 압입시스템"
 제10-0393331호 "제네바기구 등의 구동축 캠"
 제10-0589700호 "회전력을 전달할 수 있는 탄성중심기기"
 제10-115405호 "반경길이 가변식 구동변환장치"
 제10-0470347호 "압입용 탄성중심기기"
 제10-0407117호 "Sinusoidal 감속기"
 제10-0993212호 "복합파워실린더" 등 다수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에 다수 특허 등록 

주요경력

- '82. 03. ~ '87. 02. 육군복무(ROTC#20), 대위 예편
- '87. 03. ~ '90. 02. (공립)서울직업학교 교사
- '89. 11. 일본 문부성초청 국비유학장학생 선발시험 합격, 도일
- '95. 04. ~ '00. 03. 일본 오사카대학 / 문부교관(전임교원)
- '98. 10. ~ '99. 09. 일본 야마다엔지니어링 /연구고문(겸임)
- '98. 09. ~ '00. 04. (주)세우포리머공학기술연구소/소장(겸임)
- '00. 06. ~ '07. 01. 씨앤엠테크놀로지 / 대표
- '07. 01. ~ 현 재 씨앤엠로보틱스(주) / 대표이사 

주요수상내역

- 제12회 전국기능경기대회 기계조립 직종 1위('77)
- 기계조립기능사('76) 

소개

"현장을 도외시 한 채 학문적 연구 성과에만 매몰되어서는 시장성 있는 제품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학문적으로 뛰어난 연구 성과라 해도 기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제대로 구현될 수 없고 시장에서 외면 받는 기술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기술력이 어느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선 반드시 뛰어난 기능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전국기능경기대회 금메달리스트이면서 오사카 대학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전임교원으로 재직하다 귀국해 제조업에 투신,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는 씨앤엠로보틱스(주) 주상완 대표.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그를 쉰 일곱 번째 이 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선정했다.

일면 화려해 보이는 이력이지만 주상완 대표의 인생은 고비마다 시련이었다. 1959년 서울에서 3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중장비 사업을 하던 아버지 밑에서 비교적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며 평탄치 않은 삶이 시작된다. 결국 어려운 형편 탓에 학자금 면제, 기숙사 혜택에 대학진학 혜택까지 가능하다는 금오공고에 입학한다.

"입학 전 견학한 금오공업고등학교는 당시 최첨단의 설비를 구비하고 있어 책상물림이었던 저에게는 별천지 같은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별천지 같을 것만 같던 고등학교 생활은 기대와는 크게 달랐다. 육사 생도들이 견학을 올 만큼 규율은 엄했고 방학마다 한달씩 군사훈련을 가는 '반 군대'나 다름 아니었다. 또한 개교 초기라 학교를 가꾸는 작업도 학생들이 도맡아 해야 했다. 게다가 입학시 약속됐던 대학 진학 혜택은 어느새 기술하사관 군복무로 바뀌어 있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꼬박 기계와 씨름하다보니 기능 수준은 나날이 높아갔고 그럴수록 성취감과 목표의식은 더해갔다.

"기능이 몸의 세포에 축적되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요? 타고난 재능은 없다고 느꼈기에 부족한 부분은 노력과 꾸준함으로 메워나갔습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단순한 신념이었던 그는 결국 1977년 제12회 전국기능경기대회 기계조립 직종에서 1위를 차지했고 국립대 진학 기회가 주어져 충남대학교 기계공학교육과에 진학했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시련의 연속이었다. 양친을 6개월 사이 모두 여의면서 집안의 가장이 되었으나 과외 금지령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기회도 없었다. 대학교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충당할 수 있었으나 생활비가 없어 굶는 날도 많았다.

대학진학 후 양친이 모두 돌아가시면서 생활은 더욱 어렵게 되었지만 다행히 장학금을 받아 가까스로 대학을 졸업하고 5년간 군복무(ROTC 20기) 후 서울직업학교 교사로 교편을 잡게 된다. 교사 생활은 평온하긴 했지만 점차 가르치는 일에 소명의식이 부족함을 깨닫고 있었다.

교직에 대한 회의, 체계적 학업에 대한 욕심 등으로 주 대표는 결국 일본 유학을 결심하고 1년을 준비한 끝에 문부성 초청 국비 유학 장학생으로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그렇게 32살의 늦깍이 외국인 유학생의 커다란 도전, 남들이 모두 무모하다 했던 도전이 시작되었다. 국립 오사카대 기초공학부 제어공학과에 배정받아 1년 6개월 동안 과사무실에서 먹고 자면서 공부했다. 돌아보면 고교 시절에는 기능 실습으로, 대학에서는 사회적 혼란으로 학문적 기초를 다질 수 없었던 그였기에 또 다시 밤잠을 줄여가며 수학, 컴퓨터 언어 등의 부족한 기초 이론을 독학해야 했다.

이런 난관 속에서 그에게 힘이 되어준 건 뜻밖에 고등학교 때 익힌 기능이었다. 기본적으로 기계에 대한 이해가 높을 뿐더러 이론에만 밝은 사람들과 달리 기계 설계부터 제작까지 전 과정을 직접 수행할 수 있다 것이 큰 장점이 되었다.

그가 설계한 실험 기계 설계도를 보고 예산이 너무 많이 든다고 제작을 꺼려하던 교수에게 그가 직접 기계를 제작해 보여주자 교수는 놀라워했다. 이후 실험실 기계를 그에게 맡기지 않던 전문 기사들도 복잡한 정밀기계 작동법을 가르쳐주며 그의 능력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익힌 실력으로 일본의 괜찮은 대학에서 큰 소리 치며 공부할 수 있었죠. 고교 졸업 후 15년여가 지난 시점이었는데도 몸의 세포가 자연스레 반응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기능의 소중함을 절감한 때였습니다."

이 같은 능력 덕분에 교수에게 인정받은 그는 박사 과정 2년 차에 전임 교수(한국의 전임강사)로 임명되는 이례적인 행운을 얻게 된다. 석사 과정을 2년 만에,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5년 만에 취득한 그에겐 오사카대학의 교수라는 안정적인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뒤로 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창업을 결심한다.

"마음속엔 현장에서 부딪치고 성취하는 기능인의 유전자가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학자로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침 소장으로 있던 (주)세우포리머공학기술연구소가 폐업하여 무작정 연구소를 인수하였고 이것이 바로 씨앤엠테크놀로지(씨앤엠로보틱스의 전신)의 시초가 됩니다"

물론 창업 당시 만류도 많았고 일본 창업 권유도 있었지만 주 대표는 이를 모두 물리치고 귀국해 척박한 국내 제조업에 투신했다. 그는 제조업과 부품산업의 대 일본 종속이 심화되는 상황을 극복하는데 일조하고 싶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 이름도 온고지신(溫故知新) 정신에서 Classic과 Modern의 앞 글자를 따지었다.

"우리나라 제조업에 아직 채워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습니다. 힘들고 고단한 삶의 시작이었지만 일본 교수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습니다."

그는 직원 2명과 함께 강서구 등촌동의 창고를 빌려 사업을 시작했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 그를 도운 것은 역시 고교시절 익힌 기능이었다. 직접 기계를 설계하고 제작하여 납품하면서 기술력을 쌓아나갔다. 다른 현장 경험이 없었음에도 판매 수준의 품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도 기능의 힘이었다고 웃음 짓는다.

"몸이 기억하는 기능은 아무리 꺼내 써도 줄지 않는 화수분 같습니다."

창업 초기에는 개발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렇게 대기업 연구소의 실험장비나 생산라인의 정밀검사장비 등을 수주해 납품했다. 이를 통해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자 이 같은 제작 수주가 기술 축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주 대표는 회사 발전을 위해 큰 결정을 내린다. 수주 납품 비즈니스를 과감히 접고 고유 브랜드로 승부를 건 것이다. 그가 선택한 것은 그의 전공을 살린 분야로 제품을 소프트웨어로 제어해서 자동화시키는 일종의 로봇분야.

수주 납품 비즈니스를 하면서도 틈틈이 기술개발을 통해 그는 이미 2000년 (압입용)센터링디바이스를 세계 최초로, 2002년에는 AC 서보 프레스(AC SERVO PRESS)를 국내 최초로 선보이며 상업화 하였다. 이어 2006년에는 압입력 계측 기능이 내장된 센터마스터(Center Master)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기술력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이 밖에도 씨앤엠로보틱스(주)는 "로봇압입시스템", "정밀 제네바 메카니즘", "하이브리드 프레스 시스템" 등 국내외 30여건에 이르는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현재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 파워텍, 현대 위아 등 국내 대기업과 토요타자동차, 야마하, 히타치 등 일본 기업에 납품하고 있다.

올해 초 그는 대기업도 쉽지 않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제조업 분야에서 일본과 한국 기업 간 합작이란 보통 일본이 첨단 기술과 자본을 대고 한국은 자본과 인력을 대는 식이다. 그런데 씨앤엠로보틱스가 첨단기술을 대고 일본 기업(NPM)이 자본과 인력을 대는 합작법인이 탄생한 것이다. 합작법인은 도쿄에 설립된 NCM. 씨앤엠로보틱스는 기술을 대는 대가로 50%의 지분을 인정 받았다.

"인맥도 배경도 없고 정규 코스를 밟지 못한 저 같은 경우는 기술력과 제품력으로 정면 승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일본 유학생활에서 배운 체계적인 이론과 함께 풍부한 현장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과도 없었을 거라 확신합니다. 따라서 현장 기능인과 소통하는 기능적 연구원, 기능과 이론적 배경을 겸비한 연구하는 기능인이 바로 대한민국 기능인의 미래상이라고 봅니다."

삶의 고비마다 자신을 일으켜준 것은 고교 시절 익힌 기능과 인내와 성실이었다는 주상완 대표, 기능인에서 교수로 변신했다 다시 기능의 세계로 돌아오며 이론과 현장을 두루 섭렵한 그가 제시하는 기능인의 미래상에서 우리 기능인의 존재가치와 앞으로 나아갈 바를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