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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통섭
2012년 07월

선정호 : 67호

업종 : 전자

주 생상품 : 플라즈마 클리너 등

사업장 규모 : 근로자수(51명), 매출액(161억)

회사주소 : 대전광역시 유성구 탑립동 839번지

홈페이지 : http://www.visionsemicon.co.kr/main

학력사항

대전공업전문대학 전자공학전공 졸업(1981년)
계룡공업고등학교 통신과 졸업(1979년)


소속업체

비전세미콘㈜ 

특허 및 실용신안

2007.01.03 반도체플라즈마세정장치외6건
2005.02.18 반도체패키지제조용 오븐외5건
2007.03.20 기판보관용메거진
2006.12.21 품질경영시스템(ISO9001)
2006.12.21 환경경영시스템(ISO14001) 

주요경력

’83. ~ ‘84. 선경화학 사원
’84 ~ ‘2002 11. 엠코테크롤로지 코리아 과장
‘2003 ~ 현재 비전세미콘(주) 대표이사 

주요수상내역

2007년 12월 31일 수출기업 부천시장표창
2010년 11월 30일 제47회 무역의날 300만$ 수출탑 수상
2011년 11월 30일 제48회 무역의날 500만$ 수출탑 수상
2012년 07월 10일 67회 기능한국인 고용노동부장관상 수상 

소개

비전세미콘(주)는 2001년 3월 반도체장비 제조 및 수리를 목적으로 세워진 업체이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 사용되는 플라즈마 시스템, 큐어 오븐 등을 제조하여 LG이노텍(주), 하이닉스, 엠코 등에 납품하는 외에 스태츠칩팩 상해, 엠코 이와테 등에 수출하고 있는 비전세미콘(주)은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외 우량 거래처를 확보, 매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는 업체이다.

이 업체의 윤통섭(53세) 대표는 한 우물만 파는 마음가짐으로 지난 30년간 반도체 제조장비의 외길을 걸어왔다. 그는 "성공은 기술을 가진 자만이 쟁취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사업에 임해왔으며, 이제 그의 리더십 아래 다양한 제품을 생산해온 비전세미콘(주)은 신뢰도 높은 반도체 제조장비의 선두자리에 우뚝 섰다.

윤 대표는 공장에서 30km 떨어진 충청남도 논산군 벌곡면에서10남매 중 아홉째로 태어났다. 넉넉찮은 살림살이였지만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그는 지금도 어머니와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을 추억하곤 한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다닐 때까지, 어머니가 나물을 뜯거나 밭을 맬 때 꼭 저를 데려가셨습니다. 다른 사내아이들 같으면 그게 참 달갑지 않았을 건데, 저는 오히려 즐겁더군요. 지금도 봄이면 회사 주변에 나물을 뜯으며 어머니를 그리곤 합니다. 그 당시의 어머니와의 추억은 정서적인 부분에 아주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표로써 사람을 이해하고 만나는데 인간적인 따뜻함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을 조사를 하면 대통령, 장관, 장군을 이야기하던 친구들과 달리, 그는 과학자를 꿈꾸곤 했다

“작은 외가가 형편이 좋아 중학교 1학년 때 소년소녀 전집을 저희 집에 물려주었습니다. 비록 시기는 늦었지만 그 전집을 몇 번이고 읽으며 과학과 기술에 관한 상상력을 키웠죠. 이러한 포괄적인 지식이 훗날 제품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가 살던 시골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고등학교를 진학하는 것만으로도 큰일이었다. 윤 대표도 실업계 고등학교를 진학해 서둘러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공업고등학교를 진학한 그는 작은 외가에 얹혀살며 식당일을 돕게 된다.

“작은 외가는 식당을 크게 하여 5층 건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거기서 청소를 하고 보일러를 때는 역할을 주로 하였죠. 그때는 자정이면 통행금지였으니 밤 열한시 오십분에 꼭 나가서 연탄재를 버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시간을 어긴 적은 없었습니다.”

윤 대표는 공업고등학교를 다니며 전자분야를 전공으로 삼게 된다. 전자는 당시 선호되는 분야 중 하나였다. 그에게 기술을 가르쳐준 김학연 은사가 기능경기대회 출신으로, 그 분 밑에서 가장 첨단기술을 공부하게 된 것은 그에게 큰 행운이었다. 그 시절 기능인들은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처럼 철학이 있었다. 그는 스승들을 통해 집념을 가지고 기능을 익혀야 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들의 최신기술은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들보다 앞서갈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

이후 윤 대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1983년 천안에 위치한 선경화학에 입사하였다. 그가 맡은 업무는 비디오테이프 불량도 분석이었다. 당시 비디오테이프 제작은 활황기였고, 공장의 규모도 매우 컸다. 그러나 배우는 폭은 좁아서, 그는 좀 더 첨단사업으로 옮겨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윤 대표는 반 년 남짓 만에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의 전신인 아남산업으로 1984년 이직하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회사는 비록 전에 다니던 곳보다는 작지만, 미래가치는 훨씬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당시는 반도체 제조 자동장비가 막 도입되던 시기였다. 따라서 장비와 핵심부품 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였다. 핵심부품 중 서브모터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반년을 못 버티고 고장이 나기 일쑤였다. 그래서 회사는 윤 대표에게 이것을 수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는 약 1년간 홀로 실험과 연구를 거쳐 결국 수리를 성공시켜, 1985년 연 10억의 비용 감소를 이끌어 낸다.

이후 성실히 회사 생활을 이어간 윤 대표는 관리직으로 제조 전반에 관여함과 동시에 동생인 윤기섭(47세) 전 대표에게 비전세미콘(주)의 전신인 비전전자 개업을 권하며 사업 일선에도 관여하게 된다. 그러나 다니던 회사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동생의 사업마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자 하나의 일에 매진해야겠다고 결심, 퇴직하고 2003년 비전세미콘(주)의 대표이사로 취임한다. 대표이사 취임 후 지속적인 신제품 개발에 매진한 결과, 2003년 버티컬 매거진을 적용한 반도체 플라즈마 시스템에 대한 특허를 획득해 2004년 이를 상용화하였다. 이후 비전세미콘(주)은 삼성전자, 하이닉스, LG이노텍 등 다수의 국내기업과 일본,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수많은 해외의 기업들에 제품을 수출하게 된다.

2005년 중국의 스태츠칩팩 상해에 처음 플라즈마 시스템을 납품할 때는 미국 제품보다 월등한 스펙을 믿지 못해, 윤대표가 해당 장비를 직접 가져가 시연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결국 총 4차에 걸친 엄정한 테스트 후 수출이 성사되어, 비전세미콘(주)은 안정적인 해외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미국 장비가 세계시장의 80%를 점유하던 시절입니다. 신제품 판매를 위해 스태츠칩팩사와 스펙미팅을 했는데 기존 장비의 두 배가 되는 16매거진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고 하자 믿지 않는 눈치더군요. 그래서 제가 직접 기기를 들고 가서 테스트를 받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작업자를 시켜서 1차 테스트를 받고, 그 결과가 좋아 2차 테스트를 품질관리팀에서 진행했지요. 역시 결과 좋아서 3차 엔지니어 팀이 테스트해서 완벽한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그러자 기술총괄매니저가 화를 내며 4차 필업 테스트를 직접 했습니다. 필업 테스트는 필름이 서로 단단히 붙어있는지를 시험하는 것이 관건이지요. 매니저가 필름을 서로 떨어뜨리려 해도 떨어지지 않자 갑자기 테이블에 이걸 집어던지더니 ”엑설런트!“라고 딱 한마디 하더군요. 그날 즉시 우리는 장비 다섯 대를 수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윤 대표는 비전세미콘(주)을 2005년 10월 벤처기업으로 등록, 2006년 1월에는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하며 기술연구에 매진하였다. 또한 2008년 6월에는 <대중소 협력재단 구매조건부 개발사업>에 참여해 2009년 다이렉트 플라즈마 클리닝 시스템을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에 납품하는 등 국내 유수의 반도체 제조기업과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등 경제위기 속에서 투자가 끊기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전 직원이 일정액의 급여를 반납하고 회사 살리기에 동참해 이를 극복한바 있다.

30년간 반도체 제조장비 제작에 매진해 온 윤 대표가 강조하는 것은 ‘믿음을 기반으로 한 소통’이다. 윤 대표는 리더로서 직원들에게 믿음을 주고, 판매자로서 고객에게 믿음을 주는 것만이 서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반도체 제조장비는 관리자나 엔지니어의 눈높이에 맞춰 제작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24시간 기계를 직접 사용하는 작업자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합니다. 관리자는 외형이 깔끔한 장비를, 엔지니어는 기술성이 높은 장비를 선호하는 반면 작업자는 신뢰도가 높고 사용이 편리한 장비를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1등 고객은 그 누구보다도 작업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인생에 있어서 기회가 큰 파도처럼 오는 것이 아니라 작은 물결 속에 포함되어 오는 것이라 믿고 있다. 자신도 타인도 그것이 기회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오직 준비된 사람만이 그것을 판별할 수 있다. 이때 준비란 인성과 더불어 한 분야에 대한 노력을 정진하는 것이라 말하는 윤 대표. 반도체 제조장비에 쏟아온 30년 세월은 앞으로 기능인이 되기를 꿈꾸는 후배들에게도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