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능한국인 안내

기능한국인 리스트

조해현
2020년 07월

선정호 : 161호

업종 : 선박선실의장

주 생상품 : 선박 선실인테리어 공사(의장, 전장, 도장)

사업장 규모 : 상시 근로자 수 152명, 매출액 68억 원

회사주소 :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진순환도로 771, 에스오션타원 907호

홈페이지 :

학력사항

- 고등학교(이하) : 정수직업훈련원수료(’81), 현대공업고등학교(’87)
- 대학교(이상) : 울산과학대(’89년), 경주대학교(’09년)

소속업체

- 업 종 : 선박제조 및 설치
- 주 생산품 : 선박 선실인테리어 공사(의장, 전장, 도장)
- 사업장 규모 : 상시 근로자 수 152명, 매출액 68억 원
- 소재지 : 울산시 동구 봉수로 339

특허 및 실용신안

- (ISO) ISO9001:2015 “인증범위(인증번호QMS-4207) :
선박 실내인테리어의 시공/전기 및 전기설비의 시공외”
- (ISO) ISO14001:2015 “인증범위(인증번호EMS-1556) :
선박 실내인테리어의 시공/전기 및 전기설비의 시공외”

주요경력

- ’81.10.1 ∼’12.4.30. 현대중공업(주) / 직위 부장
- ’12.5.1 ∼ 현재 해인기업(주)/ 직위 대표이사
- ’01∼’11년 전국기능경기대회 장식미술 심사장/국제심사위원역임
- ’17∼현재 울산시기능경기위원회 기술위원장

주요수상내역

- 국제기능올림픽 장식미술 직종 금상(`83)
- 동탑산업훈장(`83) 외 13건

소개

「이달의 기능 한국인」 161번째 수상자 해인기업(주) 조해현 대표이사는 선박선실 인테리어 설계 및 설치, 시공분야의 전문 기술인이다. 개인으로서 `83년도 국제기능올림픽 장식미술분야 금상을 수상하였으며, 선박 선실설계 및 생산시공 업계에서 높은 경쟁력을 보유한 현대중공업그룹 내 해인기업(주)을 운영하고 있다.

■ 주경야독의 노력으로 성취한 ‘세계 최고’ 명성
조해현 대표이사는 중학교 졸업 이후 서울에 상경하여 생계유지를 위해 가구점 일을 시작하였다. 한창 성장하던 청소년기, 성인의 신체조건을 다 갖추기 전부터 무거운 가구를 등에 지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며 고된 청소년기를 보냈다. 가구점이 폐업한 이후에는 띠 동갑 큰형의 슈퍼마켓에서 과일·야채 장사를 도왔다. 조 대표이사는 힘든 슈퍼마켓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 살아갈 길을 찾겠다는 마음을 늘 갖고 있었다. 그러나 창업 자본이나 특별한 기술이 없었던 조 대표이사는 우연히 신문에서 정수직업훈련원의 모집공고를 보게 되고, ‘살 길을 만들기 위해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공예공과 야간반에 지원한다.
조 대표이사는 주경야독하며 정수직업훈련원에서 1년 6개월간의 과정을 수료했다. 동급생에 비해 두각을 보인 조 대표이사를 눈여겨보았던 당시 담임선생님은 장식미술 기능훈련 과정 참여를 권유했다.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의 조 대표이사는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라는 여겼고, 이때부터 장식미술 기능인으로서 삶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특수훈련생은 합숙훈련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슈퍼마켓 일을 병행할 수 없었다. 일을 잘해왔기에 큰형은 조 대표이사에게 슈퍼마켓 일을 지속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며 권유하기도 했지만, 조 대표이사는 굳은 의지를 다지고 기능인으로서의 길을 선택했다.
기능훈련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장식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선배가 없었기 때문에 기술을 익히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정수직업훈련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합숙을 하게 됐다. 선배가 없어 기능연마에 어려움을 느끼던 조 대표이사는 선수들의 훈련과정을 참관하여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또 어려운 것은 직접 물어보기도 하며 조금씩 기술을 습득하게 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같은 해 16회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하여 금상을 수상하게 되고, 그 기술력을 인정받아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 기술인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오직 기술력뿐이다
비록 회사에 입사하여 회사원이 되었지만, 기능인으로서의 더 큰 성취에 늘 갈증이 있었던 조 대표이사는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지속적으로 기능훈련을 진행했다. 회사에서 자재 등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었고, 서울과 울산을 오가며 훈련에 매진했다. 지속적인 노력 덕에 `81~`82년 전국기능경기대회 금상수상자와 평가전 후 국가대표선수로 선발되었고, `83년 오스트리아 린쯔에서 열린 제27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당당히 금상을 수상했다. 당시 정부에서도 이 국제기능올림픽 대회에 굉장히 많은 관심이 있었기에, 귀국 당시 카 퍼레이드를 진행하는 등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 이런 경험에서 얻은 성취감과 만족감은 기능인으로서 삶을 지속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후에는 선실설계부로 배치를 받았으나 몇 개월 후 기술교육원에 재배치되어 3년간 후배양성에 힘쓰게 된다. 조 대표이사는 `87년부터 선실설계 부서로 복귀하여 본격적으로 실무를 시작하게 된다. 회사에서 기능인 출신 직원에게 높은 대우를 해주었기 때문에 오직 기술연마와 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조 대표이사는 업무를 통해 선실의장설계 능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특히 선박 인테리어 전문가의 길을 선택한 이후에는 선실생산부에 자원하여 1500명 규모의 STENA ROPAX를 건조하였다.
당시, 진행과정의 많은 어려움이 있어 출·퇴근시간을 따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일에 빠져있던 시기였고, 이런 열정이 있었기에 성공적으로 건조할 수 있었다. 이후 현대중공업에서 건조하는 모든 배의 선실/MOSS LNG TANK 보온/LPG TANK 보온을 담당하면서 수백 척의 배가 조 대표이사의 손을 거쳐갔다. 더불어 선박의 LPG TANK의 공법을 FORM IN SITU(INJECTION TYPE)에서 SPRAY TYPE 으로 개선하는 등 다양한 성취를 일구어 나갔다.
■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방법이 보인다
조 대표이사는 늘 자신만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이 목표였다. 경쟁력 있는 사업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 분야에 있어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주어지는 일에 늘 최선을 다했고 더 많이 배우기 위해 늘 적극적인 태도로 업무에 임했다. 마침, 현대중공업의 물량증가로 사내 협력사를 모집하게 되었고, 조 대표이사는 또 다른 기회라 생각하여 해인기업(주)을 설립하게 된다.
조 대표이사는 40년간 인테리어 분야의 기능과 기술을 습득해온 말 그대로 선실인테리어분야의 전문가다. 더불어 30년간 현대중공업에서 선박선실설계와 선실생산시공·설치 등을 담당하면서 어느 누구와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은 기술이 있다고 자부하였다. 그러나 초기에는 조직구성원간의 팀워크나 시스템이 견고하지 않았던 탓에, 품질, 공정, 안전 등에 걸쳐 문제가 많았다. ‘선원이 더 편하고 더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선실을 만드는 회사’라는 존립목적을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미흡한 부분을 개선하고 발전시켜나가면서 회사를 경영하였고, 현재 해인기업(주)은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에서 건조하는 선실생산 부문을 담당하고 있으며 사내협력사에서 150명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한 건실한 회사가 되었다.
조 대표이사는 ‘사람이 재산이다, 회사의 분위기가 성공을 좌우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더 좋은 회사, 더 좋은 선배가 되기 위해 지금도 매일 노력한다. 기능인으로서 더 좋은 기술을 개발하고 접목하는 것이 오랜 삶의 고민이었지만, 한 회사의 대표가 된 이후에는 직원들이 회사에 자부심을 갖고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건강한 사내 환경 조성을 위해 매일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조 대표이사는 늘 “사람과 싸우지 말고 일과 싸우자”, “하기 싫은 사람에게는 핑계가 보이고,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방법이 보인다”는 말을 강조하면서 일에 대한 집중과 직원간의 화합을 강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을 중시하는 조 대표이사는 지금도 매일 아침 출근하면 모든 직원들과 눈을 마주치고 악수하며 안전을 당부하며 하루의 건승을 다진다.
조 대표이사는 자원 없는 우리나라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우뚝 설 수 있는 방법은 높은 기술력을 갖는 것뿐이라 말한다. 때문에 많은 젊은 인력이 기능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제조업이 다시 활력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고 또 스스로 노력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