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호 : 75호
업종 : 전자
주 생상품 : CCTV, 방송음향, 자동제어, 전광판 등
사업장 규모 : 상시 근로자수(23명), 연매출액(3년 평균 : 44억)
회사주소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신원로 22 반월공단 B606-1-2 주요생산품목 : CCTV, 방송음향, 자동제어, 전광판 등
홈페이지 : http://www.sysmania.com/
한국산업기술대학교 대학원 수료(‘13.06.)
동양미래대학교 (‘09)
동양공업전문대학 (‘96)
금오공업고등학교(‘86)
(주)시스매니아
○ 특허, 실용실안 취득 및 국제규격 ISO 인증 등
- 특허(단독: 레일형 이동카메라 등 8건, 공동 : FSK방식을 이용한 비상 호출 시스템 등 1건)
- 실용신안(단독 : CCTV카메라 모듈 등 8건 )
- ISO 인증: ISO 14001(환경인증 시스템 구축), ISO 9001(품질관리 시스템 구축)
- ’95.05~’05.02 : 시스매니아 / 대표 (개인사업자)
- ’05.03~’11.05 : ㈜ 조양 연구소장(겸직)
- ’05.03~ 현재 : ㈜ 시스매니아 / 대표 (법인사업자 변경)
○ 자격취득 및 기능경기 입상실적
- 공업전자기기 기능사 1급(‘90)
- 전자기기 기능사 1급
- 유선통신기계 기능사 1급
- 전자 기사2급
- ‘85년 지방기능경기대회 공업전자기기 직종 2위
○ 주요 수상내역
- 지방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표창(’03 )
□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4월 『이달의 기능 한국인』으로 (주) 시스매니아 지창환(45) 대표를 선정했다.
□ 『이달의 기능 한국인』 일흔 다섯 번째 수상자인 지창환 대표는 국내 CCTV분야에서 20여 년간 CCTV SI를 리드해 온 인물로 끊임없는 연구와 새로운 시도로 현재 우리나라의 방범, 방재 분야 기술 선도업체를 발전시키고 있다.
□ 1980년대 일본이나 미국의 제품이 주축을 이루었던 CCTV시장은 IMF이 후 판도가 바뀌었다. 국내기업들이 CCTV 관련 기술을 발전시키고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품종을 고객 맞춤형으로 개발, 제조, 공급하며 국내업체들이 눈에 띄게 성장했는데 여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이가 (주)시스매니아(대표이사 지창환)이다.
□ 1967년 대구 칠성동에서 태어난 지 대표는 경남 밀양 삼랑진읍에서 자랐다. 어릴 적부터 사물의 작동원리에 호기심이 많았던 지 대표는 고교 진학을 결정할 당시 큰 망설임 없이 경상북도 구미시의 금오공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기계 공학에 대한 관심이 더 컸던 지 대표는 향후 발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기계공학에 대한 호기심을 가슴에 품은 채 전자공학을 선택했다.
◌ “집을 떠나는 것과 인문계로 진학한 친구들과 멀어지는 것이 슬퍼 향수병에 걸리기도 했지만 제 선택을 후회 한 적은 없었습니다.”
□ 공업계 고등학교 진학은 지 대표에게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특히 고교생의 신분으로 처음 출전한 기능경기대회는 지 대표의 꿈을 찾아보는 첫 번째 계기였다. 비록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하지는 못했지만 대회 준비를 통해 전자공학에 관한 경험과 이론, 그리고 지식으로 자신을 보다 단단하게 무장하게 됐다.
□ 지 대표의 첫 직장은 1986년에 자대배치 받은 육군본부 통신지원대였다. 정비, 문서, 행정, 사진 등 기본 통신관련 업무를 하면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며 평소 관심이 컸던 기계분야를 다시 접하기도 했다.
◌ 전기·전자공학과 기계공학과의 혼합기술인 메카트로닉 부문에 제대로 눈을 뜬 시점이 이 때였다. 제대할 때는 전자·통신분야의 총 9개 기술자격을 취득했는데 전문대학 졸업예정자에게 응시기회를 주는 전자기사 2급(現산업기사)부터 국내 최초 공업전자기기 1급 기능사자격까지 획득하면서 기술인으로서의 면모를 다졌다.
□ 스물 다섯이 되던 1991년, 그는 사회로 나갔다. 지 대표가 두 번째 직장으로 선택한 곳은 제대할 당시 군에서 받던 봉급보다도 적게 준다는 CCTV업체였다. 돈보다 가능성과 자신의 분야를 확실하게 꿰뚫어 보고 결정한 것이다.
◌ 그동안 그가 쌓아온 기계, 전자, 사진의 3박자가 고루 갖춘 분야였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그가 입사한 회사가 7개월 만에 문을 닫았고 직장 상사와 의기투합 해 시작한 동업 역시 오래가지는 못했다.
◌ 1995년 4월, 결국 혼자서 새로 시작했다. CCTV 전문회사 (주)시스매니아의 전신 ‘오리엔탈시스템’의 시작이었다.
“당시만 해도 일본이나 미국제품이 CCTV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었어요. 저희 회사도 처음엔 외국제품을 구매해 시설공사와 보수 작업을 했습니다. 아이디어가 좋아도 국산 신상품이 국내 시장에 받아들여지긴 어려웠거든요.”
□ IMF 외환위기는 지 대표에게 터닝 포인트였다. 국가적인 위기인 동시에 국내 생산품에게 있어서는 기회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저렴한 국산품 수요가 커지자 지 대표는 제조업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높은 가격대비 내구성이나 안정성, 제작기법 등 여러 부분에서 드러나는 유명 외국제품의 단점을 보완하면서도 저렴한 한국형 CCTV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 “소비자 니즈에 부합하는 상품을 신속히 개발하기 위한 개발 능력과 최대한 빨리 생산하고 투입할 수 있는 제조능력을 구축했습니다.”
◌ 그가 노력을 기울인 부분은 각종 센서와 연동하며 정밀 제어를 필요로 하는 촬상부와, 유/무선을 망라한 통신수단을 의미하는 전송부와 원하는 영상을 자동 또는 수동으로 모니터에 표출하는 감시부, 그리고 각 촬상부와 전송부, 감시부를 제어하는 제어부까지 포함하는 시스템으로 CCTV SI(System Integration) 였다.
◌ 지대표의 CCTV 전송기술은 2007년 4월에 과학기술처로부터 신기술(NET : New Excellent Technology) 인증과 그해 10월에는 산업자원부로부터 신제품((NEP : New Excellent Product) 인증을 받기도 했다.
□ 2005년, 주식회사 시스매니아로 법인 전환을 한 지 대표는 고객요구에 따라 대기업이 할 수 없는 다품종 소량생산에 중점을 맞췄다. 현재 그의 회사에 CCTV 종류가 5백여 종에 달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 남들은 좀처럼 손을 댈 수 없는 특수 주문형 경호장비를 제작해 납품하고 수심 수십, 수백 미터 압력 하에서도 작동하는 CCTV 카메라 설비, 메카트로닉 기술에 충실한 레일형 CCTV, 모 원자력 발전소에서 운영하는 긴급 비상지령 장치 등등 주요 국가기관과의 특별주문에 의한 맞춤형 설비를 제작하여 납품하는 것도 지 대표와 그의 직원들이 자랑하는 경쟁력이다.
◌ 그가 구축한 CCTV System은 국내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멕시코에 위치한 포스코 현장에 그의 CCTV가 들어가기도 했고 사우디아라비아 군부대의 감시 시스템 설계 의뢰가 들어오기도 했다.
□ 지 대표는 다른 분야 개척을 위한 노력도 이어 나간다.
2006년에 들어서는 새로운 기술과 변화의 주류에 동참해 CCTV SI 이외에도 공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방송음향 시스템, 전광판 시스템, 계장 및 자동제어 시스템, 국방, 해양, 항공 유비쿼터스 분야 등 새로운 분야로 발을 넓혔다.
◌ 2009년에는 기술혁신형 중소기업(INNO-BIZ)으로 확정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이산화탄소 감축과 관련한 활발한 국제적 합의가 도출되는 것을 눈여겨 본 지 대표는 현재 세계적 추세에 맞춰 각 가정에서 발생되는 이산화탄소로 조달하고 에너지는 자가 발전을 통해 공급하는 저에너지 소모형 온실과 주택용 채소배양기 개발을 준비 중이다.
◌ “현재의 주력사업과는 전혀 다르지만 미래가 필요로 할 것을 사전에 기술개발을 해야 하는 것이 기술자들의 몫”이라는 것이 지 대표의 생각이다.
□ 2011년 한국산업기술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한 지 대표는 올해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회사 임직원들에게도 계속 대학과 대학원에 진학을 권고하고 있다. 더 나은 기술을 위한 지식의 나눔 또한 앞서서 실천했다.
◌ 국내에서 기술 공유가 다소 폐쇄적이라는 것이 안타까웠던 그는 2006년 ‘CCTV 활용마스터’라는 CCTV입문서를 펴냈다. 이 분야를 꿈꾸는 후배들을 위한 배려였다. 지금까지 이뤄온 기술과 발전방향을 후배들이 잘 알아야만 CCTV가 더욱 발전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최초로 만들어 진 CCTV 관련 서적으로 2010년도 당시 기술에 맞게 수정을 거쳐 증판(CCTV시스템 구축)했으며 현재까지도 각 기관이나 전문학원에서 CCTV 관련 기술교재로도 활용하고 있다.
□ 지 대표는 늘 “먹고 살만하다고 안주하는 순간 더 이상 발전은 없다”는 것을 전제를 두고 살아간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탐문하고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스스로 움직이는 데서 살아있는 이유를 느끼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일과를 마치고도 새로운 기술습득과 사업방향에 대해 밤늦도록 회의를 이어나간다.
◌ “운과 때를 기다린다 하면 사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치를 가지면서 현실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최선을, 나중도 최선을 다 해야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다보면 어느 새 옆에 돈이 와 있고, 명예가 와 있는 것이지, 쫒다보면 절대 가까이 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