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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
2020년 08월

선정호 : 162호

업종 : 제조, 도매업

주 생상품 : 폐쇄회로TV 주변기기

사업장 규모 : 상시 근로자 수 32명, 매출액 176억 원

회사주소 : 경기 안양시 동안구 시민대로 365번길 52

홈페이지 :

학력사항

- 고등학교(이하) : 대구경상공업고등학교(’77)
- 대학교(이상) : 경기대학교 경영학과 학사(’18) 

소속업체

- 업 종 : 제조, 도매업
- 주 생산품 : 폐쇄회로TV 주변기기
- 사업장 규모 : 상시 근로자 수 32명, 매출액 176억 원
- 소재지 : 경기 안양시 동안구 시민대로 365번길 52 

특허 및 실용신안

- (특허) 제10-0648512호 “환형 광양자 소자 고집적 어레이 모듈 및 이를 구비한 광 조사장치”(공동) 외 5건
- (실용신안) 제0364080호 “불법 주·정차 단속을 위한 번호판 인식 및 자동 방송 단말기”(공동)
- (ISO) 9001:2015/KS Q ISO 9001: 2015 외 1건 

주요경력

- ’77.12 ~ ’88.03 서흥전자공업(주) / 연구실장
- ’88.04 ~ ’91.12 한진전자경보시스템 / 대표 (회사 설립)
- ’91.12 ~ ’97.07 한진영상정보(주) / 대표이사(상호 변경/법인 전환)
- ’97.08 ~ 현재 ㈜아이엔아이 / 대표이사 (상호 변경) 

주요수상내역

- 대통령표창(`15) / 국무총리표창(`12)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표창(`19) 외 5건 

소개

「이달의 기능 한국인」 162번째 수상자 ㈜아이엔아이 이상우 대표이사는 감지센서 및 영상감시설비(CCTV) 연구개발·제조 부문의 전문 기술인이다. ㈜아이엔아이는 조달청 우수제품 선정기업 및 해외조달시장 진출 유망기업(G-PASS 기업)에 선정되는 등 꾸준한 연구개발과 R&D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 어느 산골마을 소년의 유일한 희망 ‘기술’
이상우 대표이사는 경북 김천 중에서도 첩첩 산골마을인 대덕산 감주골에서 농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농사를 짓느라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은 열댓 명씩 한 집에 모여, 이웃 아주머니 또는 할머니가 한 명씩 돌아가며 돌봤다. 그러던 중 이 대표이사가 세 살 때 돌봐주시는 할머니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대청마루에서 떨어지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그 바람에 다리를 다쳐 지체장애(3급)를 갖게 됐으며, 평생 한 쪽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럼에도 산중에 있는 초등학교를 홀로 오갈 만큼 배움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5~6학년 전교생이 대덕산을 올라가는 날, 말리는 선생님을 뒤로한 채 ‘남들과 같이 정상에 오르겠다’는 일념으로 지팡이를 도구삼아 약 1,290m나 되는 정상에 함께 올랐다.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갓난아이 때 일어난 사고지만,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집념과 의지는 오늘날 이 대표이사를 있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 아버지의 냉정한 결단력과 형제자매들의 양보 덕에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당시, 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한 이 대표이사는 공부를 계속 시키고, 나머지 여동생 2명과 형 1명은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농사 짓는 데 일손을 보태게 했다. 이 대표이사는 학창시절 내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다 읍내에서 라디오, TV, 전축 등을 고쳐주는 전파상을 차리는 것으로 목표를 정하고 공업고등학교에 진학을 결심한다.

■ 장애의 벽을 딛고, 기술인의 꿈에 더욱 가까이
평소, 다리는 불편할 지라도 그 외는 부족할 것 없이 당당했던 이 대표이사는 대구에 있는 경상공업고등학교 전자과를 지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다. 남다른 학구열과 의지로 전자기기기능사2급 자격증까지 취득했지만, 취업은 쉽지 않았다. 졸업 전 마지막 학기, 다른 동기들은 하나 둘씩 취업을 하는데, 다리가 불편했던 이 대표이사는 작은 상가에서 조차 외면당했다. 취업의 쓴 맛을 보고 허무하게 대구에서 고향 김천 산골마을로 내려오게 된 이 대표이사는 ‘이대로 앉아있을 수는 없다’며 무작정 서울로 올라갈 결심을 했다.
당시 집안의 전 재산인 송아지 판돈 3만원을 가지고 서울로 상경했다. 그러나 서울에서도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동대문 근처 여관을 얻어 숙식을 하며, 공단이 많았던 구로공단 일대를 전전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서울 출생 졸업생도 많을뿐더러, 굳이 다리가 불편한 이 대표이사를 쓸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이유였다. 상경하며 가져온 돈이 바닥이 난후 서울역 지하도에서 노숙을 하고 소지하고 있던 손목시계를 전당포에 맡긴 후 받은 돈으로 직업소개소 의탁을 통해 구의동에 있는 작은 공장에서 일할 수 있었다.
처음 취직한 그곳은 주로 군에서 사용하는 무전기, 안테나를 제조·수리하는 공장이었다. 하지만, 다리가 불편한 이 대표이사는 하루 종일 쇠톱으로 안테나를 자르는 단순 노동을 맡았다. 지금 하는 일이 전파상 사장이라는 자신의 꿈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여, 다른 회사를 다시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 한 지인의 소개로 이 대표이사 인생의 변곡점이 될 회사를 만나게 됐다. 바로 전국 우체국, 농협에 초음파 감지기를 이용한 경보장치를 납품하던 서흥전자공업(주)이다.

■ 성실함과 꾸준한 연구개발이 성공의 원동력
이 대표이사는 `77년 서흥전자공업(주)에 취직 후, 불편한 몸이었지만 어떤 일이든 적극적으로 해냈다. 공업고등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을 현장에서 접목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즐겁고 뿌듯했다. 생산제품을 납품할 일이 있으면 전국 어디든 찾아가 직접 설치했으며, 연구개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렇게 3년 만에 과장 직위에 오르고, 이후부터 모든 기술을 진두지휘하며 회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느날 사장이 일본산 마이크로웨이브감지기를 회사에 가져왔다. 해당 제품의 원리, 조립법 등을 연구해 자사에서 국산화를 꾀할 요량이었다. 이 대표이사는 밤낮을 연구해 사장이 들고 온 일본산 감지기 보다 부피는 축소하면서, 원가는 절감한 제품을 직접 손으로 개발했다. 남다른 기술력을 가졌음에도 불구, 연구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이 대표이사의 역량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입사한지 어느덧 8년, 이 대표이사는 다시 한 번 인생의 전환을 맞게 된다. 서흥전자공업(주) 사장이 당시 차장이었던 이 대표이사와 상의 한 마디 없이 회사를 팔아넘긴 것이다. 가뜩이나 임금이 제때 들어오지 않고, 몇 번이나 부도날 상황 겪었던 이 대표이사는 퇴사를 하고 창업을 결심했다. 그렇게 여의도 한 오피스텔 사무실을 빌려 지인 2명과 함께 감지기 설계 및 조립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했던 탓인지 사업장은 금방 문을 닫게 됐다. 이후 서흥전자공업(주)에서 인연이 된 지인의 일을 도와주다, 두 번째 창업 기회를 얻게 된다. 오랜 단골이었던 청계천 장비 부품상가 사장님의 사업 권유와 투자를 받게 된 것. 그렇게 투자금 400만원을 지원받아 `88년 당시 구로구 시흥동 공구상가(7평)에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5만원 짜리 작은 사무실을 얻었다.
그간 꾸준히 한길을 걸어온 덕분인지, 사업 첫해 모 관공서에서 발주한 9,900만원 짜리 감지기 및 CCTV 설치 사업을 수주하게 됐다. 추운 겨울, 설계, 제조, 설치를 밤낮없이 꼬박 직원 두 명과 했다. 그렇게 회사를 일구던 중, 서울에서 안양으로 기업을 이전하면 다양한 세금을 면제해주는 정보를 듣고 125평 아파트형 공장을 구입하여 입주하게 되었으며, 그로부터 15년 뒤 `11년 지금의 ㈜아이엔아이(대지250평, 연면적653평)사옥을 건축하여 이전하게 되었다.

■ 후배 기술인에 전하는 두 가지 덕목 : ‘간절함’과 ‘도전정신’
이 대표이사는 미래를 꿰뚫어 보는 식견과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업계를 선도하는 회사를 이뤄냈다. 좌우명 본립도생(本立道生, 근본이 확립되면 길이 자연히 생겨난다)을 기반으로, 건실하고 내실 있게 경영 한 덕분이다. 지금도 ㈜아이엔아이는 과감한 R&D 투자를 진행, 한 발 앞선 신기술을 적용한 제품들을 생산·출시하고 있다.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갖고도 기술에 대한 간절함과 열망으로 꿈을 이룬 이 대표이사는 후배 기술인을 위한 세 가지 당부를 남겼다. 첫째는 뚜렷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정할 것, 둘째는 간절함과 도전정신을 갖고 실행할 것, 셋째는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고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노력할 것.
이 대표이사 역시 대표 기술인으로서, 후배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더 나은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일선에서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더불어, 중소기업중앙회 소속인 ‘중소기업사랑나눔재단’ 등기이사로 활동을 더욱 열심히 하는 등 기업인으로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다하겠다고 전했다.